
김 대리에게 소고기를 얻어먹은 이후, 회사 생활은 천국이었다.
나는 '박스 포장' 업무에서 공식적으로 해방되었다.
김 대리가 "부서 씨는 우리 회사의 'R&D 인력'이야! 이런 잡일 시키면 안 돼!"라고 박 부장에게 강력하게 건의한 덕분이었다.
이제 내 공식 업무는 '사진 관련 AI 솔루션 제공'. ...이라고 쓰고, 그냥 '아아' 마시면서 AI로 노는 게 일이 되었다.
김 대리가 폰으로 찍어온 '구린' 사진을 5분 만에 '작품'으로 바꿔 던져주면, 그는 "부서 님, 최고!"를 외치며 상세 페이지를 만들러 갔다.
"아... 편하다."
할 일이 없으니, 자연스레 사장실 쪽으로 눈이 갔다. '김 사장'. 요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아, 진짜! 이놈의 텀블러는 왜 이렇게 마진이 안 남아!"
김 사장은 맨날 남의 물건을 떼다 파는 데 약간의 불만이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AI로 사진을 멋지게 찍어 팔아봤자, 결국 돈은 '제조사'가 다 버는 구조였다.
"안 되겠어. 우리도 'PB(자체 브랜드) 상품' 하나 만들자!"

사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이템은 '텀블러'. 요즘 젊은 감성에 맞는, 힙한 놈으로.
그날부터 'OO유통' 사무실은 '텀블러 무덤'이 되었다.
김 사장은 시장 조사랍시고, 별다방부터 시작해 온갖 유명 브랜드의 텀블러를 수십 개나 사들였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사장은 자기 책상에 텀블러 수십 개를 진열해놓고, 턱을 괸 채 쳐다보기만 했다.
"음... 이 디자인은 너무 흔하고..."
"이건 손잡이가 불편하고..."
"아, 모르겠다! 공장에 샘플 의뢰부터 넣어봐!"
...최악의 수였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는 '삽질'의 결정체.
나는 '아아'를 쪽 빨며 생각했다. (저 멍청한 짓... 또 시작이네.)
'돈 들여 제작하기 전에, 눈으로 먼저 보면 되잖아?'
나는 조용히 내 자리로 돌아와 '장난감'을 켰다.
[LLM활용] [나: AI, 지금부터 너는 스웨덴의 산업 디자이너 '스벤(Sven)'이다. 20대를 위한 미니멀 텀블러 디자인 10종을 생성해.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무광 파스텔톤 (피치, 민트, 크림 화이트)] [2. 로고는 아주 작게, 필기체로 'Nabusor's Pick'이라고 박아.] [3. 스튜디오에서 찍은 전문가용 제품 컷으로 생성. 조명 완벽하게.]

띵. 띵. 띵. 모니터 위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텀블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 사장이 사 온 그 어떤 텀블러보다 10배는 더 감각적이었다.
"좋아. 하지만 이걸로 사장을 놀라게 하긴 부족하지."
나는 AI가 만들어준 텀블러 시안 중 베스트 3개를 골랐다. 그리고 '포토샵'도 아닌 '파워포인트'를 켰다. (그게 제일 만만하니까.)
[LLM활용] [나: AI, 이 텀블러로 '상세 페이지' 기획안을 짜줘. 메인 카피는 '당신의 하루를 채우는 컬러'. 20대 여성 모델(아까 걔 '지나')이 이 텀블러를 들고 카페에 앉아있는 샷도 하나 만들고, 6중 보온/보냉 구조라는 인포그래픽도 하나 만들어.] [아, 그리고 '가짜 고객 리뷰'도 5개만 써줘. "색감 미쳤어요 ㅠㅠ 인생 텀블러 등극!" 이런 느낌으로.]
나는 AI가 뱉어내는 카피와 이미지들을 파워포인트에 착착 붙여넣었다. 마치 이미 수천 개가 팔린 '베스트셀러' 제품의 상세 페이지처럼.
나는 이 '가짜' 상세 페이지를 들고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어제 말씀하신 텀블러 말입니다."
"어? 어... 그거 지금... 디자인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는데..."
나는 사장의 모니터에 내 노트북을 연결했다.
"시안 몇 개 만들어봤습니다."
AI가 만든 10종의 텀블러 디자인이 화면에 떴다. 사장의 눈이 커졌다.
"잠... 잠깐! 나부서 씨! 이거 어느 공장에서 샘플 받은 거야? 당장 연락처 줘! 샘플비 얼마 들었어?!"
나는 '아아' 빨대를 물며 씩 웃었다.
"샘플비... 0원입니다. 아직 세상에 없는 물건이거든요."
"뭐...?"
"그리고 이건,"
는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이 제품의 '상세 페이지'입니다."
'당신의 하루를 채우는 컬러'
'6중 단열재로 24시간 유지되는 완벽한 온도'
'고객 리뷰 ★★★★★ 색감 미쳤어요 ㅠㅠ'
사장은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 '가짜' 페이지를 보고, 이미 '대박'을 직감했다.
"나부서 씨... 자네..."
"이 페이지로 먼저 광고를 돌려보고, '구매하기' 클릭률이 제일 높은 디자인으로 실제 공장에 발주 넣으면 됩니다. 그럼 재고 걱정 없죠."
"........."
김 사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나를 '박스 포장'하던 신입으로 보지 않았다. '사진 찍는 직원'으로도 보지 않았다.

"나부서!!!" 사장이 내 어깨를 꽉 잡았다.
"자네... 자네는 '기획자'야! 우리 회사의 미래야!" 그는 사무실 전체가 떠나가라 외쳤다.
"모두 주목! 오늘부로 나부서 씨를... '기획팀 팀장'으로 임명합니다!"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내게 꽂혔다. 김 대리는 엄지를 치켜세웠고, 박 부장은 멍한 표정이었다.
"팀... 장...?"
얼떨떨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나는 김 사장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 사장님. 그럼... 기획팀은 저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김 사장이 내 등을 BGM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자네 혼자지! 자네가 '기획팀'이야! 원 맨 아미(One Man Army)! 하하하!"
"...네?"
나는 '기획팀 팀장'이라는 명패가 생길(아마도) 내 빈 책상을 바라봤다. 혼자뿐인 팀장이라.
"흐음."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남은 '아아'를 마저 빨았다. 빨대 끝에 쌉쌀한 성취감이 묻어났다.
"나쁘지 않네."
백수 나부서는, 그렇게 스스로 '발전'하고 있었다.
나부서 따라하기
텀블러 시안 이미지 작성하기
제품 소개 페이지의 카피 문구 뽑아내기